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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주의 맹시

사실은 네 새하얗고 붉은 얼굴을 자주 흘겨봤다.

1.

너는 늘 내 옆에서 엄지 손가락을 죽 뻗어 달을 가렸다. 

'봐, 나는 이렇게 달도 가려줄 수 있는데.' 

 나는 그 곧은 손가락을 보다가 가려진 달을 보다가 다시 그 얼굴을 봤다. 노란 달빛에도 붉기만 한 얼굴. 나는 그 붉은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. 전같지 않은 나한테도 마냥 맑고 깨끗한 밤하늘 같이 일정하게 새카만 네가. 나는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닌 걸 알아, 모조리 알아. 그렇게 버럭 거리고 싶었는데. 그러느라 인상을 그리도 쓰고 할 말이 많은 얼굴로 너를 쳐다봤는데도 너는 그냥 웃어보였다. 내가 하는 걱정들은 아무것도 아닌 듯이 그 빳빳하고 하얀 옷을 입고도 빛나기만 했다.

나는 헤벌쭉한 그 얼굴이 너무 싫다.

가느다랗게 새어나오는 웃음 소리도 너무 싫다.

그렇게 말하고 싶었는 걸, 알고 있었어?

물음표와 느낌표 그 어디일까 아니 사실은 쉼표였다. 알고 있었어, 알았어. 늘 알고는 있었지. 너는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뚝 끊었다. 뚝뚝 끊어졌다. 나는 그게 눈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. 왜냐면 눈물이 마르면 바스락 거리는 눈물 자국만 남는데 너는 눈물이 그쳐도 흔적 하나 없으니까. 그러니 그건 그냥 물이다. 네가 뱉어내던 빨간 것들도 다 그저 케첩같은 거다. 하얗고 빳빳한 그 옷을 마구 구김가게 하는 네 고통도 그냥 다 허구다.




2.

너는 어떻게 그렇게 괜찮을 수 있어?

어쩌다 물어진 말에 너는 그랬다. 그냥 괜찮으니까. 나는 것도 거짓말이라 믿었다. 괜찮을 수 없었다. 

네 얼굴에 반짝이는 게 말라붙은 소금기라, 케첩 같은 것들이 철냄새 그득한 피라, 네가 밤마다 기침하며 나를 찾던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

나는 네가 싫은데도 괜찮지 못했다. 더 이상 배가 들썩거리지 않고 콧구멍도 벌렁이지 않게 됐을 때는 더욱 그랬다. 네가 달을 가려주지 못해서가 아니었다. 그래서 내 부끄러움이 훤히 드러나서가 아니었다 그냥. 난 헤벌쭉 웃던 그 얼굴이 너무 싫다. 가느다랗게 새 나오던 웃음 소리도 너무 싫다. 단정하게 찍은 까만 액자 사진에도 나를 똑바로 보고 웃는 저 얼굴이 너무 싫다. 내가 하는 네 걱정은 아무것도 아닌 듯이 굴다가 기침 속에 나를 부르던 너도 너무 싫다. 내가 아무것도 모를거라 생각했던 너도 싫다. 하얗게 날리는 걸 잡으려고 한줌 두줌 움켜잡는 나도 싫다. 괜찮지 못해서 네가 그렇게 싫었던 나도 싫다.

나는 노란 달빛 밑에서도 붉게 웃던 네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. 사실은.


사실은 그냥


사실은 그냥 그 얼굴에 

내 입술을

가져다 대고 싶었던 것 같다.



20180124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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